히라오하라 케이즈카(히라오하라 쿄즈카) 출토품 및 공양탑(쿠요토)
히라오하라 케이즈카의 구경(헤세이 2년 촬영)
경전공양탑
히라오하라 케이즈카 에도 시대에 전국 60여주 의 영장 돌고, 사경 기념으로 지어진 경전공양 츠카입니다. 츠카 위에 세워져 있었다 경전공양탑 에 의해, 에도 시대 중기 다카나가 5년(1708년)에 조립된 것을 알았습니다. 현재는, 히라오 1-49-7번지에 공양탑이 세워져 있습니다만, 본래는 약 20미터 서쪽의 농협 평미 지점 옆에 있었습니다(상기 사진 참조). 헤세이 4년에 건물 건설을 위해서 현재지에 옮겨진 것입니다.
케이즈카 자체는 말법 사상 의 영향으로 헤이안 시대의 시절부터 귀족들 사이에서 만들어지지만, 전국의 영장 돌고 사경을 납입 육십육부회 국경총 는 16세기에 활발해져 에도시대까지 계속해서 행해졌습니다. 히라오하라 케이즈카는 이러한 케이즈카의 흐름의 말기에 속하는 것입니다. 시내에는 경전공양탑이 25기 있습니다만, 이 중 13기가 66부회 국경총으로, 히라오하라 경총은 이 중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석탑의 형태도 잘 갖추어져 있습니다.
조사한 히라오하라 케이즈카
교육위원회의 석조물 조사로 시내에서 가장 오래된 경전공양탑 것으로 밝혀져 비석에 새겨진 「수수한 일체 시주 등 불잔기 유입 이치 안치 석불 아래」의 명문 을 근거로 하여 쇼와 51년에 케이즈카의 발굴 조사가 행해졌습니다. 츠카 자체의 크기는 약 6미터×4.5미터의 타원형으로, 약 70센티의 높이를 갖고, 츠카의 꼭대기로부터 약 20센티 남쪽으로 내려간 곳에 경전 공양탑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발굴 조사는 츠카의 정상의 성토를 벗다 하는 것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표토 아래에 하원석 보인다 자연 잔해 가 깔려 있고,이 포석에서 약 1m 정도 파내면 지산 (로옴층)에 있어서, 이 지산을 파고 직경 1미터정도의 원형의 토단 가 발견되었습니다.
토단 내에는 비젠 구운 대형甕 (높이 32.7 센치메터, 구연경 32.5 센치메터)를 놓고 이 안에 청동제 의 경통 (높이 30.5 센치메터, 직경 17.7 센치메터)가 납품되었습니다. 경통 뚜껑에 나무 조각 같은 흔적 인정 되었기 때문에甕 에는 나무 뚜껑이 붙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경통 내에서 3개 경상 그리고 화경 그리고 부패한 경전 라고 생각되는 유물이 발견되었습니다. 경상 3 점 모두 나무 상자이며, 경전 수납되었지만 수분에 의해 부패가 현저하게, 경전 꺼내서 펼칠 수 없었습니다. 경상 뚜껑 중 하나에서 "무슈 토요시마 군 □"傳心 "라고 적힌 묵서가 발견되었습니다. 화경 는 직경 6.5 센치메터의 청동제로, 소형이면서 완전한 것입니다. 이 외에도 경통내 유물 로 경권 의 축선 2점, 관영통보 한 점이 발견되었습니다.
육십육부회 국경총 의 발굴 보고 예가 적은 현재, 발굴 조사에 의해 유물과 비석과의 관계가 밝혀진 것은 매우 귀중한 성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케이즈카의 단면도
경통을 담은 甕
청동제 경통
경통 내의 상태
경상자에 담긴 경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