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루용수 에도 시대의 역사를 중심으로

오마루 용수의 역사
오마루 용수는 이나기시 오마루의 다마강에서 취수하여 가와사키시 노보토까지 흐르는 용수로, 에도 시대 이후 이나기시 지역의 마을들과 하류의 마을들을 적셔주는 매우 중요한 농업용수로서 유지·관리되어 왔습니다. 용수의 개착 시기에 대해서는 명확한 사료는 없지만, 에도 막부의 연공 증수를 목적으로 한 대규모의 치수·이수 정책의 일환으로 17세기경에 만들어졌다고 생각됩니다. 주변 지역에서는 에도 시대 초기에 니카리용수나 후추용수 등의 개착 공사가 진행되었으며, 이 시기에 다마강 유역의 각지에서 대규모 용수의 개착이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연형 3년(1746년)의 고문서(가와사키시·사호다 가문서)에 따르면, 겐로쿠 12년(1699년) 이후 오마루 용수 조합에 의한 수선 자재의 부담이 이루어졌다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적어도 그 설립이 1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오마루 용수의 흐름
용수의 흐름 개요는 다음과 같습니다. 취수구는 오마루의 "이치노야마시타"(현재의 남무선 다마강 철교의 약간 상류)에 있었습니다. 다마강에 길이 약 100간(약 182미터)의 취수 댐을 쌓고, 여기서 막힌 다마강의 물은 폭 두 간(약 3.6미터)의 용수 관(용수를 끌어들이기 위한 수문)에서 취수되었습니다. 취수된 물은 먼저 내구를 지나 분량관으로 향합니다. 분량관은 오마루촌 용의 용수와 타촌 용의 용수를 나누기 위해 설치된 관으로, 도랑 폭은 오마루촌 용 1에 대해 타촌 용 2의 비율로 나누어졌습니다. 여기서 분수된 오마루촌 용의 용수는 대포리라고 불리며, 오마루촌의 남부를 적시고 나서 나가누마촌과 야노쿠치촌을 흐르며, 더 나아가 가와사키 방향으로 향합니다. 한편 타촌 용의 용수는 오마루촌의 동부에서 스가보리와 신보리로 나뉩니다. 신보리는 나가누마촌의 중앙부를 가로지르는 형태로 흐르고, 또한 스가보리는 마을의 북부를 우회하는 형태로 흐른 후 오시타테촌 방향으로 향해, 격투구라고 불리는 분수구에서 다시 세 개의 흐름으로 나뉩니다. 이처럼 여러 흐름으로 나뉜 용수는, 더욱 그물망처럼 나뉘어 야노쿠치 방향에서 하류의 가와사키 지역의 마을들의 논을 적셨습니다.
용수를 이용한 마을들
오마루 용수를 사용한 지역은, 에도 시대에는 이나기시 지역의 4개 마을(오마루 마을, 나가누마 마을, 오시타테 마을, 야노쿠치 마을)과 가와사키시 지역의 5개 마을(스가 마을, 나카노시마 마을, 스가오 마을, 고탄다 마을, 노보리 마을) 이었습니다. 이들 마을은 타치바나 군과 타마 군이라는 두 군에 걸쳐 있었고, 지배 영주도 달랐지만, 오마루 용수를 이용한다는 점에서는 일치하여 "오마루 용수 구카촌 조합"을 조직하였습니다. 이 용수 조합의 가장 중요한 일은 용수의 유지·관리로, 용수 도랑 자체의 수선, 용수 댐·수문 등의 시설 수선이 이루어졌으며, 이들 공사에 사용되는 자재는 각 마을에서 부담하였습니다. 또한 용수 이용에 있어서는, 자주 물 분쟁이 발생하였습니다. 물 분쟁의 내용은, 여름철 가뭄 시의 물 분배를 둘러싼 것과, 타마강의 용수 댐 설치를 둘러싼 것 등 다양하며, 마을에서는 그때마다 막부에 출소하여 판정을 요청하였습니다.


현재의 오마루 용수
에도 시대부터 유지・관리되어 온 오마루 용수는 현대에 들어 점차 농업용수로서의 기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현재의 관리는 쇼와 27년 8월에 설립된 "오마루 용수 토지 개량구"가 하고 있지만, 용수를 이용하고 있는 경작지의 면적은 해마다 감소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수전의 감소로 인해 불필요해진 용수는 매립되거나 그 모습이 변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새롭게 친수 공원으로 정비되고 있어 귀중한 수변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 오마루 용수의 수로도 (이나기시 역사 상권에서 작성됨)
- 수쟁의 고문서 (사호다 가문서)
- 용수 수선의 고문서 (아시카와 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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