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갱신일:2017년 6월 27일
히라오하라 케이즈카의 구경(헤세이 2년 촬영)
경전공양탑
히라오하라 케이즈카(히라오하라 쿄즈카)는, 에도시대에 전국 60여주(로쿠주요슈)의 영장(레이조)을 돌고, 사경(샤쿄)을 납입한 기념으로 만들어진 경전 공양 (쿄텐쿠처럼)의 츠카입니다. 츠카 위에 세워져 있던 경전 공양탑(쿄텐쿠자토)에 의해, 에도 시대 중기의 호에이 5년(1708년)에 조립된 것을 알았습니다. 현재는, 히라오 1-49-7번지에 공양탑이 세워져 있습니다만, 본래는 약 20미터 서쪽의 농협 평미 지점 옆에 있었습니다(상기 사진 참조). 헤세이 4년에 건물 건설을 위해서 현재지에 옮겨진 것입니다.
케이즈카 자체는 말법 사상(마포시소)의 영향으로 헤이안 시대의 무렵부터 귀족들 사이에서 만들어지게 됩니다만, 전국의 영장(레조)을 돌려 사경을 납입하는 66부회 국경 츠카 (로쿠쥬로쿠부카이코쿠쿄즈카)는 16세기에 활발해져, 에도 시대까지 계속해서 행해졌습니다. 히라오하라 케이즈카는 이와 같은 케이즈카의 흐름의 말기에 속하는 것입니다. 시내에는 경전 공양탑이 25기 있습니다만, 이 중 13기가 66부회 국경총으로, 히라오하라 경총은 이 중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석탑의 형태도 잘 갖추어져 있습니다.
교육위원회의 석조물 조사에 의해, 시내 가장 오래된 경전 공양탑(쿄텐쿠토우)이라고 하는 것이 판명되어, 비석에 새겨진 “수특히 일절 시주 등 불잔기 노입단 안치석불 아래의 명문(메이분)을 근거로 하여 쇼와 51년에 케이즈카의 발굴 조사가 행해졌습니다. 츠카 자체의 크기는 약 6미터×4.5미터의 타원형으로, 약 70센티의 높이를 갖고, 츠카의 꼭대기로부터 약 20센티 남쪽으로 내려간 곳에 경전 공양탑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발굴 조사는 츠카의 꼭대기의 성토를 벗기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표토 아래에는 가와라시 (카와라시)라고 생각되는 자연 잔해 (시젠 레키)가 깔려,이 포석에서 약 1 미터 정도 파고 나면 지산 (지야마) (로옴 층)에 부딪쳐이 지산을 파고서 지름 1미터 정도의 원형의 토단(어딘가)이 발견되었습니다.
토단 내에는 비젠(비젠)구이의 대형 甕(고메)(높이 32.7센치, 입연경 32.5센치)가 놓여져, 이 안에 청동제(세이도세이)의 경통(쿄즈츠)( 높이 30.5cm, 직경 17.7cm)가 납품되었습니다. 경통 뚜껑 위에 나무 조각 같은 흔적(こんせき)이 인정되었기 때문에 甕(카메)에는 나무 뚜껑이 붙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경통(쿄즈츠) 안에서는 3개의 경상(쿄바코)과 화경(와쿄), 그리고 부패한 경전(쿄텐)이라고 생각되는 유물이 발견되었습니다. 경상 상자는 3 점 모두 나무 상자이며, 이 안에 경전이 납입되고 있었지만, 수분에 의해 부패가 현저하게, 경전을 꺼내 펼치는 것은 할 수 없었습니다. 경상자(쿄바코)의 뚜껑의 하나로부터는 「무슈 도요시마군씨□」 「전심(덴신)」이라고 쓰여진 묵서가 발견되었습니다. 화경(와쿄)은 직경 6.5센치의 청동제의 것으로, 소형이면서 완전한 것입니다. 이 밖에 경통내 유물(경제 없는 이부츠)로서 경권(쿄칸)의 축선 2점, 관영통보(칸에이츠호) 1점이 발견되었습니다.
육십육부회 국경총(로쿠쥬로쿠부카이코쿠쿄즈카)의 발굴 보고 예가 적은 현재, 발굴 조사에 의해 유물과 비석과의 관계가 밝혀진 것은 매우 귀중한 성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케이즈카의 단면도
경통을 담은 甕
청동제 경통
경통 내의 상태
경상자에 담긴 경전
이나기시 교육부 평생 학습과 전화: 042-377-2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