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갱신일:2017년 6월 27일
바바가의 고문서
히라오의 바바가에서는, 에도시대의 고문서 50점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고문서의 내용은, 검지장(켄치초), 경계쟁(쿄카이 아라소)이 있는 소송 문서, 촉촉(오후레가키), 무라구(무라오키테), 마을 그림도 등으로, 에도 시대의 히라오무라의 모습이나 당시의 농민의 생활을 알기 위한 귀중한 사료가 갖추어져 있습니다. 고문서 작성 연대는 칸에이 3년(1626년)부터 겐지 2년(1865년)까지의 239년간으로, 이 중 히로나가 3년의 「무슈 쓰즈키군 사오카 쇼히라오 무라유키 수첩은 현재 시내에서 가장 오래된 근세 문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50점의 고문서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기본사료를 소개합니다. (또한 바바가에서는, 메이지 시대 이후의 근대 사료도 보존하고 있습니다.)
칸에이 3년(1626년)에 작성된 것으로, 시내에 남는 검지장(켄치초) 중(안)에서는 가장 낡은 것입니다. 내용은, 토지의 명소(소재지명), 위(정도) 첨부(즈)케(우에다(조덴), 나카타(츄덴), 시모다(게덴) 등), 반별(단베츠) (토지 일필(후로)의 면적), 명청인(나우케닌)(경작자 혹은 경작권자) 등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에도 시대 중기 무렵이 되면 비료 공급원을 잡기 위해 부정하게 타인의 임야에 들어가 낙엽이나 시모쿠사(헛소리)를 훔치는 사건이 다발합니다. 이에 대해, 촌락의 내부에서 무라오키(무라오키)가 제정되어 농민 상호의 감시 체제가 강화됩니다. 이 사료는, 보름력 14년(1764년)에 작성된 것으로, 「택지나 논밭에 인접하는 타치기・낙엽은 물론, 하야시노나 입회지(이리아이치)의 타치키(들) 기) ・낙엽에 이르기까지 마음대로 깎아서는 안 된다」라고 하는 무라구키에서, 이에 반한 경우는, 어색한 벌칙을 부과하고 있습니다.
일정 지역의 마을들이, 산림이나 하라노 등을 공동 이용하는 일이 있어, 이 토지를 입회지(이리아이치)라고 합니다. 농업생산력이 상승함에 따라 그 이용도가 늘어나 흔히 쟁론이 일어났습니다. 이나기 마을에서도 입회지를 둘러싼 쟁론이 일어났습니다만, 가장 주목받는 것은, 이 사료로 소개하는 히라오무라와 옆의 카타히라무라·후루사와무라와의 경계쟁입니다. 히라오무라의 들을 가타헤이·후루사와 양촌민이 입회 이용(이리아이리자)했다고 해서 쟁론이 일어났습니다. 평정소(효조쇼)는, 양측의 주장을 확인해, 관계 자료를 조사해 판결을 주었습니다. 그 내용은, “히라오무라가 주장하는 새로운 경계의 설정은 납득이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옛날부터 존재하고 있던 2개의 츠카(입정 츠카(뉴 죠즈카)와 13 츠카(쥬 씨즈카))를 통과한다 선을 경계로 한다.향후는 가타헤이·후루사와 양촌민은, 히라오무라의 들에 일절 입회(이리아이) 해선 안 된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정공 3년(1686년) 작성의 이 사료는, 표면이 경계선을 나타낸 그림, 뒷면이 판결의 내용을 기재한 재허장(사이쿄조)이며, “재허 그림(사이쿄) 에즈)」라고 불립니다.
히라오무라 전체의 그림이 2점 남아 있습니다. 작성 연대는 기재되어 있지 않지만, 에도 시대에 속하는 사료라고 생각됩니다. 논·밭·산림·가옥·사사 등이 상세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무슈 쓰즈키군 사오카 쇼헤이오무라 유수장」
“차출신촌 견메소 백성 연판 일찰지사”
「재허 그림도」(그림 도면)
「재허 그림도」(뒷서)
이나기시 교육부 평생 학습과 전화: 042-377-2121